라이파이젠 은행은 시작이 미약

1905년에는 13,000개가 넘는 농촌은행이 있었고 조합원수는 거의 백만명에 달했다.

이 모델은 기본적으로 견실했다. 1893년 울프(Wolff)의 보고서에 따르면, 43년간 단지 10건의 부정이 있었고 모든 사건에서 손실금은 적립금이나 보증으로 충당되었으며, 주식합명회사로의 전환 유혹도 없었다.

그러나 슐체와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모델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1892년까지 도시의 은행들은 점진적으로성장하였고 4,500여개, 150만명의 조합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소유 구조로의 전환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1889년 색스니(Saxony)에는 115개의 신용협회가 있었으나, 2년 후에는 그중 12개가 투자자소유 구조로 전환 되었다.

도산하는 경우도 너무 빈번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1892년에 1,910개의 은행 중 184개가 도산한 것으로 추산됐다.

감손율이 거의 10%에 달했다.울프는 그 원인이 욕심과 부주의에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불량어음을 받았고 외부인에게도 자유롭게 대출을 해 주었으며(1889년에 법으로 금지할 때까지), 부주의하게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였다.

그는 슐체의 시스템이 모험적인 운영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의 방식으로 유혹에 빠뜨렸다고 비난하였다(1893).

은행들은 충분한 안정성을 제공하는데 실패하였고 높은 배당, 급여, 수수료의 유혹은 장기적으로 은행을 약화시킨 편향된 혜택이었다.

사업생존을 위한 진화의 노력 속에서 그들의경쟁자들이 성장할 때 슐체-델리치 협회들이 쇠퇴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금융협동조합과 정부

정부가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면, 라이파이젠과 슐체는 ‘별로 없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정부가 최소한의 법적 보호만 제공하는 것을 필요로했다.

나머지 것들(회계감사, 감독, 유동성 관리, 상호예금 보험, 새로운 조합의 장려, 중소기업에대한 지원)은 연합회의 힘을 사용하여 스스로 해결했다.

그러나 1895년에 농부들에게 빌려줄 자본이 부족하게 되자 프루시안 정부는 지역 간에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균등하게 나누고 자본시장으로 부터 자금을 빌려오는 협동조합중앙은행(Central Cooperative Bank, 프로이센카세)를 설립하였다.

이 협동조합중앙은행은 협동조합이 아닌 정부에서 출자한 비영리 기관으로 설계되었다.

중앙은행은 도시은행들로부터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으나 자본이 필요한 농촌은행들은 그렇지 않았다.

1923년, 중앙은행의 지분 인수가 허용되었으나 여전히 국가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12 비슷하게192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정부가 라이파이젠 운동을 위해 어음교환 중앙은행에 자금을 제공하였다.

핀란드에서는 신용협동조합분야가 생기기 전인 1902년에 오코은행(Okobank)이 설립되었다.

부유한 개인들이 제공한 출자자본을 이용하였으나 점진적으로 협동조합에서 지분을 인수하였고,1920년에 진정한 협동조합은행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금융협동조합들이 설립을 위한 그리고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한 도움을 수락하는 압력을 종종 받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협동조합과 정부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체 역사에는 아시아발전에 영향을 준 ‘영국-인도’ 방식의 식민지 원조와 ‘뉴딜정책’ 하에서 연방정부에 의해 설립된 미국의 농업협동조합,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협동조합은행의 광범위한 농업협동조합 시스템으로의 통합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 관계는 상호간에 유익했지만, 전후에 남미 지역에서 원조기관의 대출 ‘전달자’로서의 신용협동조합의 이용은 신용협동조합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정부의 통제가 만연하였으며,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협동조합이 국유화되자 번성하던 협동조합 운동이 억압을 받게 되었다.

위기에 강하다?

협동조합 모델은 1차 세계대전 때도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살아 남았지만, 1929년 대공황과 이어진 세계경제 침체기에는 분명 문제시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스칸디나비아 금융위기와 같은 일부지역에만 영향을 끼친 전후의 위기에서도 시험대에 올랐다.

독일에서는 1923년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모든 은행들이 대부분의 지분과 적립금을 잃고 대출이 불가능 해질 정도로 취약해졌다.

그러나 그때 협동조합은행과 저축은행은 투자자소유은행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였다.

도시의 은행들은 독립성을 유지하였으나 농촌 은행들은 농업공황 시에 농부들의 생존을 돕도록 은행들을 통해 프로이센카세(Preussenkasse)로부터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1931년 금융위기 때에는 농촌 은행들은 다른 은행들보다 피해가 적어 정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도시의 은행들은 조합원들이 대출 상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손해를 입었고, 일부는 정부의 원조를 받아야만 했다.

1931년의 손실 이후 그들은 곧 재정 안정을 되찾았다. 전반적으로 위기 시에 협동조합은행은 위험한 모험(이내 철수해버리는 ‘투기성’ 외국자본의 유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소유 은행이나 저축은행보다 손실이 적었다.

14 최근의 위기에서와의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금융협동조합 현황

전 세계적 관점에서 우리는 각각 다른 업계기관을 대표하는 유럽협동조합은행과 세계신용협동조합운동이라는 차별적인 2개의 그룹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의 주요 차이점은 신용협동조합은 고객이 조합원이어야만 하나 협동조합은행은 비조합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용협동조합의 경우에 ‘공동유대권’ 안에 있는 사람들만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반면에 협동조합은행은 제한이 없다.

19 유럽에서는 1개의 최상위 연합회 또는 은행인 24개의 지역협동조합은행의 협동조합 시스템이 20개국에 걸쳐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1개의 최상위 연합회 또는 은행이 존재하나 프랑스에는 3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는 2개가 있다.

2010년 지표에 따르면, 3,874개의 지역은행이 있고 1억 8천 1백만명의 고객 중 조합원은 5천만명에 달한다. 예금의 시장점유율은 21%, 대출의 점유율은 19%이다.

자산은 5조 6,470억 유로이며 예금은 3조 1,070억 유로, 대출은 3조 3,050억 유로로 각각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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